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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상허 이태준 평전(511)

- 천재 시인 이상을 발굴한 천재 소설가

기사입력 2026-07-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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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단에서 이상 시인(1910.08.20. ~ 1937.04.17.)을 발굴한 작가가 상허 이태준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만약 이상 시인이 우리 문단에 없다면 현대 시문학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최근 까지도 이상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으며 많은 작가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단연 독보적인 존재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 시인이라고 평가를 하는 이상 시인을 발굴해서 문단에 작품 발표 기회를 준 것이 이태준이다. 이태준은 이상 시인 작품은 당시 문예 부장으로 있었던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를 하도록 하는 결단을 내린다. 당시 이태준은 이상 시인 작품이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해 사직서를 작성해서 자신의 서랍에 넣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태준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문단에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참으로 작가로서 책임을 갖고 하는 말이다. 이태준은 이상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중앙일보15편을 연재했었는데 독자들이 신문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이 나올 정도로 세상에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연재를 중단해야 했지만 당시 남긴 시들을 모더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참고 : 모더니스트(Modernism)

서양에서 모던(Modern)은 중세 이후부터 현대까지를 지칭함. 우리는 모더니즘을 근대주의(近代主義) 혹은 현대주의(現代主義)로 부르고 있다. 모더니즘의 특징은 과학에 기반한 자연주의, 객관성 중시, 인간의 경험과 이성에 대한 신뢰,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사회정치 체제, 자유주의, 시장경제, 급격한 산업화 등이 있다. 모더니즘의 정신을 따르던 이들을 모더니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 참고 :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문화·사회에서 기존 규범의 경계를 허물고 실험적·급진적·비전통적인 작업을 지향하는 전위(前衛)’ 개념을 뜻함. 처음에는 군사적 용어로 출발했으나 예술·문화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위의 내용을 분석하면 이상 시인은 우리 전통 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인주의로 바탕으로 하는 작가이면서 새로운 예술 분양에 도전했던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고주의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이태준이 이상 시인을 발굴한 것은 그 만큼 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이 넓었던 천재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이태준과의 인연은 이상 시인이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 이상이 건축 기사가 된 지 1년이 지난 1930, 그는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하던 잡지 '조선'에서 장편 소설 12129회 동안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문학계에 데뷔함

- 퇴사 전까지 그는 이상(李箱)을 포함해 비구(比久), 보산(甫山) 등의 필명으로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작품들을 투고함

- 1931, 그는 갑작스럽게 폐결핵을 진단받음

- 1933년 각혈을 시작 함

- 1933년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등의 문학가들과 교류하기 시작

- 1933년 정지용 주선으로 가톨릭청년꽃나무, 이런 시를 발표

- 1934년에는 순수 문학 단체 구인회에 가입

- 이태준의 도움을 받아 조선중앙일보오감도를 연재했지만,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15회 만에 연재를 중지

- 1936창문사에서 구인회 기관지 성격의 시와 소설발간에 많은 역할을 함

- 1937년 평소 동경하던 일본 도쿄를 방문

- 19372월 공원에서 배회하던 중, 불령선인으로 체포되면서 도쿄 니시칸다(西神田) 경시청 경찰서에 투옥

- 별다른 혐의가 있던 것은 아니고,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도 산발로 하고 다니는 꾀죄죄한 모습이 수상쩍어서 체포된 거라 투옥된 지 34일 만에 병보석으로 석방

- 1937년 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서 417일 새벽 4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

- 사망 전 급히 도쿄로 온 아내 변동림에게 그는 "센비키야의 메론이 먹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김

 

이상 시인은 짧은 생애 중에서 당시 유행하던 끽다점 즉 다방을 운영했다. 이름은 제비다방이고 많은 문인들의 만남의 장소와 같았다. 참고적으로 제비 다방은 1933년 종로에 차린 다방으로, 건축가이기도 했던 이상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했다. 이곳은 당시 모던 보이, 모던 걸, 인텔리들이 이용했으며 박태원, 김유정 등의 동료문인들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상 시인을 등단시킨 이태준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이태준이 키우던 강아지가 씨사였는데 그 개가 수놈인줄 알았는데 암놈이라서 이상 시인에게 넘겨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적으로 이상 시인은 소설 날개를 비롯해 12편을 썼고 시는 오감도이외에 31, 수필 3편 동화로 황소와 도깨비를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 문단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이상 시인을 발굴한 이태준의 결단은 문학인으로서 선각자라는 판단이다. 우리 대한민국 문단은 이태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관리자 (korea78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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